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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빛과 물의 향연... 관객들의 눈높이는 한 없이 날아오른다 ‘태양의 서커스 - 루치아’

  • 2023-10-29 20:13
  •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태양의 서커스’ 브랜드는 서커스를 좋아하는 국내 관객들에게 월드클래스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로서 절대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스케일을 보고 싶으면 가까워도 마카오고, 제대로 보자면 라스베이거스는 가야 되는 게 현실이기에 최근 한국을 방문한 순회공연이 10만 장 티켓 판매 돌파 기록을 세운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지난 10월 25일부터 본 공연이 개막된 ‘태양의 서커스 - 루치아(이하 루치아)’는 이러한 브랜드의 여세를 몰아 개막일부터 만원사례를 이어오고 있는 인기 공연이다. 지난 2016년 4월에 몬트리올에서 초연된, 1984년 이후 ‘태양의서커스’의 38번째 오리지널 작품인 루치아는 멕시코 연방 관광부의 의뢰로 제작되었다는 특이한 배경이 존재한다. 서커스에 멕시코를 있는 그대로 녹여달라는 주문과 지원만 한 결과, 대자연부터 루차도르와 같은 현지 인기 엔터테인먼트 요소까지 용광로같이 한데 녹아져 모인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때문에 연주와 보컬 모두 멕시코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연 전후 텐트 안과 밖에서 울려퍼지는 마리아치 선율과 스페인어 보컬의 조화는 이국적인 현장으로, 스테이지 중간중간마다 흥을 돋구는 광대와 함께 신세계로 접어드는 느낌을 두루 누리게 해준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자꾸 웅얼거리게 만드는 마법같은 운율은, 이후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으로 인해 더욱 더 인상 깊은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루치아 공연을 앞둔 빅탑은 입추의 여지 없이 대성황을 이뤘다.

올해 빅텐트는 앞서 <알레그리아> 공연 때와 거의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서 당시 방문했더라면 각종 편의시설과 좌석 배치까지 동일하다는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관객 대비해 현장 스탭 수가 부족하다보니 이로 인해서 한국 스타일로 재깍재깍 응대받기는 어려운 게 보인다. 아무래도 기존 태양의 서커스 팬덤이라면 이 익숙함 덕을 볼 일이 다소 많은 상황이 있긴 하다.

이 외에는 공연에 몰입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충실하게 되어 있다. 앞서 알레그리아가 분위기로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맛이 있었다면, 이번 루치아는 기상천외한 아크로바틱이 ‘물’과 맞물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는 게 특징이다. 단순히 쏟아지는 것이 아닌, 이 자체가 워터 캔버스 역할도 간간히 하기에 연기자 외에 배경과 무대 장치까지 눈이 가는 게 한 둘이 아니다. 여기에 연기자와 빛이 맞물릴 때에는 이제껏 없었던 아름다움을 눈에 담게 된다.

씬들 중 특히나 관객들의 환호와 감탄을 모은 것은 ‘헤어 서스펜션’과 ‘콘토션’이 태산북두 급이다. ‘헤어 서스펜션’은 여성 연기자가 머리채 하나 밧줄에 이어서 오만가지 공중묘기를 다 보여준다. 손이고 발이고 하나도 안쓰고 머리채 하나만 갖고. 원심력으로 빨려 나가는 장관이 펼쳐지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피의 모근이 아릴 정도. 머리 빠지는 게 걱정인 관객이라면 여러모로 상심이 크겠다 싶을 정도로 퍼포먼스가 압권이다. ‘콘토션’은 인체의 신비 수준으로 유연성을 뽐내는 씬이다. 척추가 90도 아니라 170도는 꺽이는 건 기본, 엉덩이 밑에 있는 머리가 표정연기까지 작렬해대니 놀라다 또 놀란다. ‘배둘레햄’ 있는 처지에서 이걸 보면 심장에 무리 온달까. 인간의 육체로 저게 된다는데 경악하며 물개박수를 치게 만든다.

▲ 이제껏 보지 못한 절정의 아크로바틱에 관객들은 박수갈채와 찬사로 화답했다.

공연 설명에 따르면 “루치아(LUZIA)의 ‘빛(스페인어로 “luz”)’은 영혼을 적시고 ‘비(스페인어로 “lluvia”)’는 영혼을 잠재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빛은 이미 ‘태양의 서커스’ 그 자체 안에 담은 내용인데, 이번 루치아에서 가미된 것이 물이다. 이의 활용은 서커스 무대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씬과 쇼를 넘어 그 자체로서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것이다. 그 많은 전기장치들과 문제 없이 완벽한 쇼를 이뤄내는 걸 보면 무대에 올리기 전 스탭들과 연기자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바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재규어가 물을 마실 때 세노테의 정령이 이와 교류하는 모습을 담은 씬인 ‘에어리얼 스트랩’에서 실감할 수 있다. 앞서 ‘CYR 휠 & 트라페즈’가 튜토리얼 같았다면, 이게 ‘물’ 관련으로는 본 게임이다. VIP 석 쪽이 비산되는 물들 꽤나 맞을 씬이지만, 떨어져 보는 이 입장에서는 물방울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아름다움을 연기자가 힘과 기교로 진짜로 보여주는 씬이다. 특히 아티스트 육체의 코어 근육이 물기에 빛 비추며 떨어지는 모습은 인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장관은, 이제 부산에서도 직접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초연 이후 누적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고 단일 공연으로 10만 장 예매를 초과한 ‘태양의 서커스’는 올해 말까지 서울에서의 공연을 진행하다, 내년 1월에 부산으로 빅탑을 옮겨 이어가게 된다. 부산 공연일정 중 현지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또 다시 지금의 감동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 당장 상설공연이 1년 365일 계속 되는 건 어렵다지만, 이렇게라도 한국 관객들이 북미 공연예술의 정수인 ‘태양의 서커스’를 접할 계기가 차근차근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장차 순회공연지 하나 더 늘고, 도시 별로 다른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그런 그림도 상상하는, 그런 기대감이 싹튼다.